2025-06-26 16:21:04
"10년 안에 복막투석이 사라질 수 있다." 신장내과 전문의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나오는 경고다. 자가 관리가 가능하고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복막투석이 국내에서는 전체 투석 환자의 불과 5%만이 선택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특히 투석 관련 의료행위 수가가 전무하여 의료기관에서 외면받는 실정을 감안하면, 이 수치는 더욱 줄어들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현재의 수가 구조가 유지된다면 복막투석은 10년 내 소멸할 수도 있다는 강도 높은 제도적 개편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혈액투석 대비 예후는 물론 비용 대비 효과성까지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해외 주요 국가에서는 복막투석 선택 비중이 50%를 넘기는 것과 달리 한국에서만 외면받고 있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복막투석은 환자가 스스로 복강 내에 투석액을 교환하거나 야간자동복막투석기를 사용하는 자가 치료 방식으로, 주 3회 병원에 방문해야 하는 혈액투석과 대비된다. 복막투석은 ▲병원 방문 최소화 ▲잔여 신기능 유지율 높음 ▲심혈관계 부작용 적음 ▲어린이 및 고령 환자에게 유리 ▲직장생활·학업 병행 가능 등 다양한 장점을 가진다. 환자 입장에서 활동 및 시간 제약을 줄여 경제활동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편익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복막투석이 혈액투석 대비 예후 면에서 뒤처진다는 인식이 있지만, 이는 의학적으로 사실이 아니다. 2010년 미국 NIH 연구에 따르면, 당뇨병이 없는 성인 환자군에서 복막투석은 혈액투석보다 오히려 생존율이 높았으며, 다른 환자군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국내 대한신장학회 ESRD 코호트 분석에서도 "복막투석은 장기 생존율이 혈액투석과 유의미한 차이가 없고, 초기 심혈관계 부작용 발생률이 더 낮다"는 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복막투석이 외면받는 현실은 수가 구조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건양대병원 신장내과 황원민 신장학회 홍보이사는 "현재 복막투석에 대한 행위 수가는 사실상 0원"이라며 "카테터 삽입이나 교육, 복막염 발생 시 대응까지 병원이 감당해야 할 일은 많은데, 별도 보상은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복막투석을 지속하기 위한 간호사 인력이나 교육 시스템 운영 비용 역시 수가에 반영되지 않아 복막투석 환자가 많아질수록 병원은 손해를 보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이는 의료진이 복막투석을 적극적으로 안내하고 권유할 동기가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되고 있다.
대한신장학회는 'Kidney Health Plan 2033'을 통해 2033년까지 말기콩팥병 환자의 재택치료 비율을 33%까지 증가시키는 목표를 세웠지만, 현재와 같은 정책적 지원 없이는 달성 불가능하며 오히려 소멸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현재의 '복막투석 외면' 기조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한국은 올해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이 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으며, 만성콩팥병 환자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대한신장학회 자료에 따르면, 말기신부전으로 투석을 시작하는 신규 환자는 매년 1만 명 안팎으로 늘고 있으며, 전체 투석 환자는 10년 사이 약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문제는 혈액투석 1인당 월 200~300만 원 이상이 소요되는 막대한 의료비이다. 이는 환자 본인 부담뿐 아니라 국민건강보험 재정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복막투석은 혈액투석보다 훨씬 저렴하지만, 현재처럼 외면받는다면 결국 국가가 감당할 수 없는 비용 압박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황원민 홍보이사는 "자발적 전환을 유도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면, 미래에는 의료 재정 고갈로 인해 환자들에게 강제적인 복막투석 전환이 통보되는 날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복막투석 비중이 5%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국은 전 세계에서도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반면 홍콩은 전체 투석 환자의 75%가 복막투석을 선택하고 있으며, 멕시코 55%, 뉴질랜드 32%, 캐나다도 20% 이상이 복막투석을 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국내외 투석 관련 수가 정책의 이질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홍콩은 'PD First 정책'을 통해 복막투석을 원칙으로 유도하고 정부가 투석액, 장비, 간호 지원을 제공하며 병원에는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뉴질랜드 역시 복막투석 전담 간호사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국가가 자가 관리 능력 향상을 지원하고 있다.
복막투석은 만성질환 관리의 이상적인 방향성과도 맞닿아 있다. 환자가 자율적으로 치료를 수행하며 '자가 관리 역량'을 강화하고 경제 활동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 이는 만성질환 관리의 기본이자 의료 자원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다. 또한, 복막투석은 의료 접근성이 낮은 농어촌, 도서 지역 등에서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으며, 이 방식이 사라진다면 해당 지역 환자들은 투석 자체를 포기하거나 장거리 이송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복막투석은 혈액투석보다 1인당 연간 30~50%가량 비용이 낮아 보건의료 재정이 팽창하는 현 시점에서 사회 전체의 의료 지속 가능성 확보와 직결된 사안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수도권 일부 병원에서도 복막투석 신규 개시를 중단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전문가들은 복막투석의 소멸을 막기 위해 해외 주요국의 사례와 같은 ▲복막투석 교육 및 유지 관리에 대한 별도 행위 수가 신설 ▲복막염 등 합병증 대응 수가 마련 등 '마중물' 역할을 할 정책 지원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범일연세내과 이동형 재택의료학회 총무이사는 "15년 전만 해도 복막투석은 약 30%의 비중을 차지했지만 제도적 미비로 인해 지속 감소하고 있다"며 "의료진의 유인책 부족으로 환자도, 일반인도 복막투석이라는 옵션 자체를 모르는 상황이 됐다"고 우려했다. 그는 "혈액투석 환자가 10년 새 2배가 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2033년에는 13만 명의 환자가 25만 명으로 급증할 수 있으며, 이에 따른 건보 재정 지출 급증은 다른 질병의 수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어 "생계로 인해 생업 활동이 꼭 필요한 이들에게 복막투석은 옵션이 아닌 필수재에 가깝다"며 "복막투석이 사회적 비용 감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 크기 때문에 제도적 뒷받침으로 이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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