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9 14:25:47
하루의 절반 이상을 일터에서 보낼 때였다. 처음 허리 디스크를 앓게 되었다. 한번도 생각지도 못한 통증에 아찔함을 느꼈다. 119 구급차에 실려 가는 동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수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그리고 이런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막막함이 밀려왔다.
‘이해는 경험에서 온다’는 말처럼, 상담을 하거나 여러 일터에 찾아갈 때 통증을 겪는 사람들을 살펴보게 된다. 출퇴근하는 길이나 편의점, 식당에서도 일하는 사람들의 아픔이 눈에 들어온다.
당장 고개만 돌려도 모니터를 한창 바라보다 일어서는 동료 노동자의 뻣뻣한 목과 구부정하고 뭉친 어깨가 보인다. 점심시간 식당에서는 위태롭게 무거운 국밥 그릇이 가득한 쟁반을 서빙 하는 노동자의 손목과 팔꿈치가 함께 욱신거린다. 주기적으로 쑤시는 허리, 무거운 짐들을 가득 든 채 계단을 오르내리며 택배 노동자의 살짝 기울어진 골반과 무릎이 눈에 선하다. 친절한 미소 아래 종일 서서 일하느라 부어있을 백화점이나 마트 노동자의 종아리와 발목 등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다양한 통증들이 눈에 밟힌다. 그러다 때로는 용기를 내어 물어보기도 한다. 아프지 않으세요? 대부분이 아파도 어쩔 수 없다고 답한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기에 생각보다 아픈 일터는 치명적이다. 근골격계 통증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통증과 통증 유발 원인들이 많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통증이 일단 발생하고 나면 일을 제대로 수행하기가 어렵다. 때로는 일을 영원히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22년 산업재해 치료를 마친 12만명 중 절반이 원래 직장으로 복귀하지 못했다.
더 심각한 것은 일터의 통증이 일상을 지탱하는 힘을 앗아간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작은 스트레스조차 견디기 힘들어지고, 쉽게 피로를 느끼며 우울해진다. 실제로 대한통증학회는 만성통증 환자 1만 2천명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10명 중 6명은 수면장애를 겪고 있고, 4명은 자살 충동을 느끼고 있고 3명은 경제활동에 지장이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아픈 일터는 모두를 아프게 만든다.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가족이다. 가족들은 아픈 사람이 겪는 통증과 어려움을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하게 된다. 일상적인 활동에 제약이 생길수록 가족들은 함께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물리적으로 정서적으로 아픈 당사자 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일상도 함께 힘들어진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일을 지시하는 회사나 고객에게도 손해가 발생한다. 아픈 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근태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각이나 결근이 잦아지고, 결근 일수가 길어진다. 작업이나 개인의 삶의 질이 낮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더 나은 생산성이나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기업의 보상이나 대처 비용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아픈 일터가 치러야 하는 대가는 때론 너무 크고, 예측하기 어렵다. 2015년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 주요 근골격계 질환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비용이 연간 4조 449억 원에 달한다. 아픈 일터는 모두에게 불행일 수밖에 없다
누구도 아프지 않는 일터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만 일터의 통증을 살피고 줄여야 한다. 마치 어린 아이를 키우는 집처럼 세심하게 돌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집 곳곳에 위험요인을 기어코 찾아내듯, 일터에서 통증을 유발할 수 있는 요인을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 직업환경을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무심히 지나쳤던 문턱과 집 곳곳의 모서리를 찾아 점검하고 살펴야 한다. 작업공간과 작업대 등 곳곳을 살필 필요가 있다. 다치기 쉬운 물건들은 치워내고, 모서리에는 부딪혀도 다치지 않도록 스펀지를 부착하고, 문턱은 없애고 딱딱한 바닥에 부드러운 매트리스를 설치하는 것처럼 일터 곳곳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더 이상 아픈 일터가 우리 모두를 아프게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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