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6 11:15:33
최근 인기를 끌었던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 출연한 100명의 셰프들의 행보가 종영 후에도 주목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급식대가' 이미영 셰프가 유명 셰프 못지않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이미영 셰프는 얼마 전까지 한 초등학교에서 15년간 근무한 학교 급식 조리사다. 아들의 권유로 출연한 이 프로그램은 우리가 학교에서 만나왔던 급식조리사의 노동을 새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미슐랭 3스타 셰프의 추억을 소환하며, 손과 입이 멈출 수 없는 시식을 이끌어내고, 이미 대가로 인정받은 호텔 조리사와의 승부에서 당당히 이기는 모습은 드라마 그 자체였다.
예능 경연 도중에도 아이들의 성장과 건강을 위해 노력했다는 이미영 셰프의 발언은 감동적이다. 하지만 100인분 정도는 거뜬히 만들 수 있는 급식대가들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사이 아이들의 안전과 건강을 책임지는 급식 시스템 속에서, 정작 급식대가들의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급식대가들이 폐암과 폐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 지난 9월에도 충청북도에서 10년간 학교에서 근무한 조리실무사가 폐암 치료 도중 세상을 떠났다. 2023년 9월에 실시된 전국 학교급식 노동자 대상 폐 CT 검진 결과, 이상 소견자가 32.33%에 달했다. 이 중 폐암 확진자와 폐암 의심자는 총 379명이었다. 2024년 7월 기준 근로복지공단에 제출된 학교급식 노동자의 폐암 산재 신청은 169건이며, 이 중 143건이 승인되었다.
급식대가들이 폐암에 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폐암과 급식조리 노동은 언뜻 연관성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급식조리 노동자들은 항상 폐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이어지고 있다. 고온에서 기름으로 튀김이나 볶음, 구이를 조리하는 과정과 조리 기구들의 기름때를 청소할 때 발생하는 조리흄이 원인이다.
조리흄은 '조리 매연'이라고도 불린다. 흄은 고온 상태에서 기체 분자가 되어 공기 중에 떠다니는 연기를 말한다. 음식을 높은 온도에서 조리할 때 각종 재료가 타면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조리흄은 입자의 지름이 100㎚(나노미터) 이하로 초미세먼지보다도 작다. 이런 조리흄을 흡입하면 기관지를 통해 폐포에 쌓이게 되며, 폐포에 쌓인 조리흄은 염증을 일으키고 이는 암으로 이어진다.
조리흄은 폐암을 일으키는 담배 연기와 같은 역할을 한다. 국제암연구소(IARC)가 발표한 2010년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조리흄에 많이 노출될수록 폐암 위험이 증가한다. 실제로 조리 시간이 한 시간 증가할 때마다 조리흄 등의 요인으로 인한 폐암 발생 위험이 17%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2019년 환경 연구 저널에 발표되었다.
조리흄으로 인한 폐암 예방법의 핵심은 환기다. 대만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공간에서는 폐암 확률이 22.7배 높아진다. 많은 급식조리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2023년 8월 산업안전보건공단은 <단체급식시설 환기에 관한 기술지침>을 마련했다. 이 지침을 통해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조리흄을 외부로 배출하기 위한 환기설비 기준을 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조리흄이 발생하는 조리기구에는 조리흄을 배출하기 위해 후드, 덕트, 배풍기 및 배기구로 구성된 국소 배기장치를 설치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보통 배기 후드는 조리기구의 위쪽에 설치하는데, 지침은 후드의 흡입 방향은 급식조리 노동자의 호흡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급식조리 노동자와 반대 방향으로 하고, 후드 흡입구(기름필터)를 조리원 정면에서 최대한 멀리 설치하도록 정하고 있다. 위쪽 후드를 통해 조리흄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급식대가들의 조리흄을 흡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 배기장치를 통해 외부로 빠져나가는 공기만큼 급식조리실 안으로 공기량을 보충해 주는 급기시설을 잘 설치해 배기가 잘 이루어지도록 정하고 있다.
주로 지하에 위치하는 학교급식 조리실을 지하에서 지상으로 옮기는 것도 방법이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조리실이 올라오면 창문이나 출입문 등을 통해 환기가 용이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실제로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에 있는 107개 학교의 지하 급식실을 2028년까지 지상으로 이전하거나 환경을 개선한다고 한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이전이 어려운 급식실을 갖춘 67개 학교에는 예산 256억원을 투입해 환기시설 개선을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서울시교육청은 2025년 급식실 환기 개선 예산의 76%를 삭감해 버렸다. 이는 급식시설의 환기 시스템이 급식조리 노동자들의 건강을 지키는 데 필수적이라는 점을 간과한 결정으로,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수백 명의 아이들에게 건강한 식사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조리흄과 조리 매연에 노출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급식대가들의 일터에 환기시설의 개선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조치로 여겨져야 한다. 급식조리 노동자들의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건강하지 않은 조리 환경 속에서는 건강한 식사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급식조리실의 환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예산 삭감이 아닌 증액을 통해 안전하고 쾌적한 일터를 조성하는 데 힘써야 한다. 아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조리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환기시설 개선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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